인디밴드로 10년 지속한다는 건 정말 힘겨운 여정이다.
감미로운 속삭임처럼,강렬한 총성처럼…
'내면의 부드러운 속삭임처럼, 혹은 크고 강렬한 총성 같은….'
이런 수식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부산 토박이 출신의 록밴드가 있다. 구속·억압을 벗어 자유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삼은 4인조 '언체인드(unchained)'. 이들이 올해로 결성 10주년을 맞았다.
열악한 지역에서 음악 열정을 10년간 변함없이 이어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음악도시 부산의 자식'이라는 자존심이다. 국내 록음악사에서 부산은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바닥을 뜨겁게 달군 헤비메탈 음악의 진앙지였다. 1990년대 중반에 이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도 부산은 록음악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당시 서울 쌈지록페스티벌 등 경연대회에서 부산은 상위 10개팀 중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저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레이니 썬' '피아' '에브리 싱글데이' 등 서울에서 맹렬한 활동을 벌이는 부산 출신 고수들은 지금도 즐비하다.
부산 토박이 출신 록밴드 '언체인드'
23일 경성대서 결성 10주년 콘서트
"우리가 부산의 음악전통 안에 있음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특히 부산에서 음악한다는 것을 소중한 신념으로 지켜나갈 겁니다. 지나간 10년과 함께 또다른 미래의 10년을 준비하고 바라본다는 다짐이지요."(김광일·보컬)
10년을 음악으로만 버텨나가는 일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닐 것이다. 자신들도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하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현실을 등지고 살았거나 철이 들지 않았다는 말이 되겠지만, 이게 바로 예술가가 아니겠냐는 반문이다.
언젠가 단 3명의 관객을 앉혀 놓고 연주한 일화가 있는데 그게 매우 중요한 것을 담고 있다. 그때를 결코 잊을 수 없는 건 관객이 적었던 탓이 아니라 그날 연주와 공연의 질이 지금까지 무대 중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 때문이다.
"관객과 우리가 뜨거운 열기를 나누고 에너지를 함께 호흡하는,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관객의 많고 적음 같은 음악 바깥의 요소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즐기고 나누는 음악 자체의 순수함, 그게 바로 예술이 아닐까요."(김지근·기타) "음악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는 이들이 많은데,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음악하는 이가 아닌가요. 그런 이유로 음악을 그만 둔다면, 그것은 필시 가짜(예술)입니다."(함진우·드럼) 예술에 대한 태도와 다짐이 예사롭지 않다.
언체인드가 구사하는 음악은 '얼터너티브' 혹은 '그런지'다. 1990년대 세계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음악 아이콘이었으나 이제는 '한물 간' 록음악으로 취급받는 음악이다. 이 장르를 택한 것은 멤버들이 어릴 때부터 받은 음악적 세례 때문만은 아니다. 무수한 음악적 고민을 거친 끝에 가장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얼터너티브의 가장 큰 매력은 거칠고 시끄러운데도 혼자서 조용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겁니다. 사운드는 동적이지만, 느낌은 정적이에요. 기타 음 하나, 가사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돌 지경입니다."(김기훈·베이스)
결성 두 달 만에 윤도현 밴드의 공연 오프닝밴드로 설 만큼 이들의 실력은 빛났다. 지금은 얼터너티브 음악 밴드로는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맛을 내는 팀으로 손꼽힌다. 첫 EP앨범 'Push me'와 두 장의 컴필레이션 음반이 그 증명이다.
언체인드는 앨범을 기획·제작하는 총괄 시스템을 직접 수행하기 위해 4년 전 자체 인디레이블 '진저 레코드'도 만들었다. 시설·장비 등에 집중·투자 중인데 올해는 꼭 첫 정규앨범을 내고 부산의 인디록을 견인하는 대표적인 레이블이 되겠다는 포부다.
10년 축적한 도저한 음악 에너지를 함께 호흡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언체인드가 오는 23일 오후 7시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10주년 기념콘서트를 펼친다. 클럽이 아닌 500석 규모의 큰 공연장에서의 록밴드 단독공연은 부산 인디록밴드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500인치 백스크린을 통한 화려한 영상과 환상적인 무대 조명 아래 대중적인 레퍼토리의 어쿠스틱 연주가 특별한 볼거리로 기대된다.
공연을 기획한 '록매니아'의 김성남 실장은 "딱딱한 록콘서트장이 아닌 모두가 어우러지는 흥겨운 난장이 될 것"이라며 "태양을 삼킬 듯한 열정과 보드카처럼 뜨겁고 강렬한 무대가 준비된다"고 했다. 서울에서 각광받는 부산 출신 인디밴드 '나비맛'이 게스트로 나온다. 공연 주관 알파사운드· 프리덤, 입장권 3만원, 인터파크 옥션티켓, G마켓 예매 가능.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